마음의 부락 #03
너의 세상, 그리고 나의 세상
김성한 · 원문 보기 ↗
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
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.
하고 싶은 말도 곧잘 하고
좋으면 좋다, 싫으면 싫다.
감정에도 꽤 솔직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.
그런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.
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
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나를
꽤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다.
괜찮은 사람이고 싶었고
잘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.
힘든 일이 생겨도
어떻게든 다시 일어나
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냈다.
그러다 보니 가끔은
정말 괜찮은 건지,
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해진 건지
잘 모르겠다.
솔직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
어쩌면 그 솔직함조차
내가 쓰고 있는 또 하나의 가면일지도 모르겠다.
그런 내 옆에 이구가 있다.
이구는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.
어디에서 강의를 하는지,
무슨 공부를 하는지,
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.
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
더더욱 알 리 없다.
그냥 내가 집에 오면 반기고
같이 나가면 좋아하고
내가 뛰면 같이 뛴다.
그런데 웃긴 건
나는 그런 이구에게도 욕심을 냈다.
어질리티를 하면서
조금이라도 더 빠르면 좋겠고
조금이라도 더 잘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다.
이구는 그렇게 빠른 녀석이 아니다.
다른 개들이 빠르게 코스를 달리는 모습을 보면
솔직히 부러웠다.
나도 조금 더 빠른 녀석을 데려왔으면 어땠을까.
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.
가끔은 이구의 능력치가 아쉬웠고
괜히 녀석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.
그런데 참 이상하다.
그렇게 아쉽다가도
돌아오는 길에 이구의 눈을 보면
그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.
사춘기 아이 때문에 마음이 힘든 날에도
사랑하는 이와 다투어 속상한 날에도
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무거운 날에도
이구는 그냥 내 옆에 있다.
내 마음을 알아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.
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
간식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.
그런데 나는 그게 참 좋다.
설명할 필요도 없고
잘 보일 필요도 없고
아무렇지 않은 척할 필요도 없다.
이구 앞에서는 그냥 나면 된다.
나는 늘 이구한테 내가 세상이겠지 생각했다.
밥도 내가 주고
산책도 나와 하고
하루가 끝나면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까.
그런데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
조금 이상해졌다.
나한테도 이구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.
나는 이구에게
조금 더 빠르기를 바랬고
조금 더 잘하기를 바랬다.
생각해보면
나 자신에게도 늘 그랬던 것 같다.
조금 더 잘해야 하고
조금 더 괜찮아야 하고
넘어지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일어나야 했다.
그래서 가끔
이구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.
조금 느리면 어때.
조금 부족하면 또 어때.
이구는 그냥 이구고
나는 그냥 나인데..
이구에게 내가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
어느새 내 세상에도
이 녀석이 너무 많이 들어와 버렸다.
생각해보면 참 웃기다.
더 빠른 녀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가
이제는 이 녀석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.
너의 세상에 내가 있고
나의 세상에는 네가 있다.
우리 그냥
지금처럼 같이 살자.
